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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관리 방법

유한함을 깨달은 사람의 루틴은 어떻게 다른가: 루틴과 죽음 인식

by PinkBear PinkBear 2025. 6. 2.

루틴을 세우는 사람은 많지만, 그 루틴을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우리는 쉽게 계획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새로운 달의 시작, 월요일 아침, 다이어리를 사거나 앱을 설치하면서 굳은 다짐을 하지만, 그 다짐은 종종 일상이라는 파도 속에서 금세 희미해집니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계획이 흘러가고 나면 나는 왜 꾸준히 하지 못할까라는 자책이 뒤따릅니다.

그런데 루틴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한 의지력 부족 때문일까요? 정말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습관화 능력'일까요? 더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시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대로 해볼 수 있겠지’,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 달에는 다시 시작하면 돼라는 생각은 삶이 유한하다는 감각을 잠시 지워둔 상태에서만 가능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루틴을 가볍게 다루는 이유는 바로 이 유한성에 대한 망각에서 비롯됩니다. 무언가를 오늘 하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고 믿고, 이번 주를 놓쳐도 다음 주가 있다는 생각은 행동의 무게를 가볍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면?’이라는 자각이 함께 한다면, 루틴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루틴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정말 실감하고 있는가입니다.

 

유한함을 깨달은 사람의 루틴은 어떻게 다른가: 루틴과 죽음 인식

 

유한함의 자각이 루틴을 변화시키는 이유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삶의 마지막 지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일상에서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지나치게 자주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일상은 위축되고 삶 자체가 무겁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멀리 밀어두고, 눈앞의 업무와 계획, 일정한 일과 속에 파묻혀 살아갑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진지하게 자각하는 순간 삶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뚜렷한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목표 없이 흘러가던 시간들이 정돈되기 시작하고, 행동 하나하나가 목적성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유한성이라는 인식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 전반을 바꾸며, 그중에서도 특히 루틴을 대하는 자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유한함을 인식하는 사람은 루틴을 단순히 '해야 할 일'의 나열로 보지 않습니다. 루틴은 그들에게 삶의 구조이자 정체성을 형성하는 뼈대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보여주는 결정이 됩니다. 하루하루는 더 이상 반복 가능한 단위가 아니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생의 조각으로 인식되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루틴을 채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곧 삶의 방향성에 대한 선택이 됩니다. 그 결과, 유한함을 자각한 사람들은 루틴을 신중히 정제하고 다듬으며, 의미 없는 반복보다는 내면의 성장과 방향성에 기여하는 루틴을 남기는 쪽으로 행동을 전환합니다.

또한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루틴의 방향을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줍니다. 루틴이란 도구는 원래 삶을 안정시키고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루틴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루틴을 지킨다는 사실 자체에 집착하며, 루틴을 지키는 것이 삶의 핵심 목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루틴이 왜 필요한지, 그 루틴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빠진 채 지속된다면, 그것은 방향 없는 반복일 뿐입니다. 반면, 유한함을 체감한 사람은 루틴을 수행하면서도 늘 이 행동이 나의 생의 궤도와 일치하는가?’, ‘이 루틴이 진짜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루틴의 반복 속에서 단순히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정교하게 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루틴을 통해 생의 밀도를 높이며, 시간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우게 됩니다.

이처럼 유한함을 진심으로 인식한 사람은 루틴의 지속 여부보다도 그 루틴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가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반복의 외형보다 반복이 축적해가는 의미를 살펴보며, 단순히 잘 지키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 지킴이 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를 자주 점검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루틴은 외형상 소박할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더 단단하고 명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한성은 우리에게 선택의 명확성을 주고, 루틴은 그 선택을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이 두 인식이 만날 때, 삶은 방향과 밀도를 동시에 갖춘 상태로 움직이게 됩니다.

 

유한함을 인식한 사람의 루틴 설계 원칙

죽음이라는 현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루틴을 더 신중하게, 그러나 더 과감하게 구성합니다. 삶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실제로 체감한 이들은 매일 반복되는 행동조차도 소중하게 여기며, 단순한 시간 채우기가 아닌 의미 있는 구조 짜기라는 관점에서 루틴을 대합니다. 이들의 루틴은 외형적으로는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기준과 목적, 삶의 태도가 녹아 있습니다. 그 설계 방식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으며, 이러한 방식은 우리 각자의 루틴 구성에도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첫째, 본질에 집중하는 루틴을 구성합니다. 유한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이들은 반드시 필요한 것에만 에너지를 씁니다. 하루의 시작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할까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로부터 출발합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대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에 맞게 행동을 정렬하는 것이 이들의 루틴 설계 핵심입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보다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래서 루틴 목록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뚜렷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하루 중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를 무엇에 쓸 것인지가 명확하며, 의미 없는 일정은 과감히 비웁니다. 이들은 많이 하는 것보다 의미 있게 남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루틴을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으로 구성해 나갑니다.

둘째, 루틴을 유연하게 재구성하는 태도를 가집니다. 유한함을 인식한 사람은 삶이 언제든 예측할 수 없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높습니다.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삶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현재의 필요와 어긋나게 될 때는 과감하게 수정합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런 건강 문제, 가족의 변화, 업무 환경의 변화 등 외부 상황에 따라 루틴을 일시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루틴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루틴이 지금의 삶에 여전히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루틴이 틀어졌을 때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루틴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실패로 느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방향을 바로잡는 회복 탄력성을 만들어주며, 장기적인 루틴 지속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셋째, 관계와 의미 중심의 루틴을 설계합니다. 유한성을 체감한 사람은 시간의 소중함만큼이나 사람의 소중함을 절실히 인식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루틴을 개인의 성장이나 성과 중심에만 두지 않고, 관계의 깊이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에도 적극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매주 정기적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시간, 자녀와 하루 10분 책을 읽는 루틴, 친구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내는 습관 등이 루틴 안에 포함됩니다. 이 루틴들은 단순히 감정적 연결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누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됩니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는 루틴 역시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일기 쓰기, 감정 기록, 일주일 회고 같은 자기 성찰 루틴을 통해 삶의 궤도를 정돈하고, 존재의 흔들림을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생산성과 효율을 위한 루틴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질적 요소를 구성하는 루틴입니다.

 

결국 유한함을 인식한 사람은 루틴을 무엇을 얼마나 잘 할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무엇을 왜 하고 있으며, 누구와 나누고 있는가의 질문을 품고 구성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루틴은 복잡하지 않지만 깊고, 단순하지만 견고합니다. 루틴이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핵심을 지키기 위한 루틴만 남기고 정제하는 이 태도는 유한한 시간을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 삶을 더 깊게 만든다

죽음을 자주 떠올리는 사람일수록 삶을 더 잘 산다.’ 이는 단지 멋진 문장이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반복해서 강조해 온 인생의 통찰입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매일 아침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문장을 마음속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삶을 허투루 살지 않기 위한 강력한 자기 각성의 도구였습니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곧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작업이며, 자신이 진짜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별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태도는 루틴의 설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흔히 루틴을 효율과 습관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시간을 더 잘 쓰기 위한 도구, 자기관리를 위한 틀, 또는 목표 달성을 위한 시스템으로만 바라보곤 합니다. 하지만 삶이 유한하다는 전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루틴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며 살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됩니다. 죽음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자세는 루틴의 목적을 단순한 관리가 아닌 존재의 증명으로 확장시킵니다. 우리가 반복하는 행동이 곧 우리의 삶이고, 그 반복이 모여 남는 것이 인생이라면, 루틴을 선택하는 기준 또한 보다 철학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신에게 몇 가지 실질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게 남은 시간이 1년뿐이라면, 지금의 루틴 중 무엇을 그대로 유지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내가 오늘 한 행동이 내 인생의 마지막 하루라고 해도 가치 있다고 느껴질까?’, ‘이 루틴이 나의 존재를 더 명확하게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그저 시간을 채우는 도구일 뿐인가?’ 같은 질문들입니다. 이러한 물음은 우리가 습관처럼 따라가던 루틴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그 안에 담긴 진짜 동기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반복되는 행동이 내 삶의 철학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언젠가 삶의 끝자락에서 후회를 남길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음을 떠올리는 행위는 루틴의 감정적 깊이를 더해줍니다. 예컨대 매일 아침 자녀의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하는 루틴, 배우자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루틴, 혹은 하루 5분간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명상 루틴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꼭 하고 싶은 일로 재정의됩니다. 그러한 루틴은 반복을 넘어 의식적 선택의 결과가 되며, 삶의 질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심리적 기반이 됩니다. 단지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이 시간을 마지막처럼 쓰고 싶으니까라는 동기에서 출발한 루틴은 지치지 않고 오래 지속됩니다.

결국 죽음을 자각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루틴을 바라보는지를 완전히 바꾸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루틴을 단순한 효율의 틀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높이는 구조로 다시 보는 시선을 줍니다. 이 시선은 반복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에 윤곽을 주며,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꾸준히 확인하게 합니다. 루틴은 이제 삶을 절약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방식 자체가 됩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일수록 더욱 깊고 선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유한성을 마주한 루틴은 삶의 본질과 연결된다

루틴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시간 관리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매일의 행동을 통해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식이며, 우리 삶을 형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루틴을 통해 삶을 정돈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루틴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반복만을 지속한다면, 루틴은 도리어 삶의 깊이를 흐릿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유한성에 대한 인식입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루틴을 대하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무작정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고, 남의 루틴을 따라 하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가 내 삶의 마지막 하루일 수 있다'는 자각은 선택의 기준을 바꿔줍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많이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질문은 루틴의 우선순위를 재정렬하고, 결국 삶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게 만듭니다.

 

유한함을 인식한 사람은 루틴을 더 치열하게 짜되, 동시에 더 따뜻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지금의 반복이 단지 생산성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삶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방식, 누군가를 대하는 말투, 하루를 마무리하는 태도까지도 루틴의 일부로 바라보며, 그 안에 삶의 철학을 녹여냅니다. 이들은 루틴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방식을 증명하고, 더는 미루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루틴은 목표 달성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을 담아내는 틀이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루틴이 삶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어떤 루틴을 반복하고 있는가는 결국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선언입니다. 루틴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삶을 수동적으로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반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끝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궤도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찾아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결코 어두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생각은 삶을 가장 밝은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조명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루틴은, 그 조명 아래에서 우리가 매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진지한 행동입니다. 오늘 하루의 루틴이 나의 유한한 삶을 구성하는 한 조각이라면, 나는 어떤 조각을 남기고 싶은가. 루틴을 다시 점검하고, 그 안에 진짜 삶의 의미를 담는 순간, 우리는 반복 속에서 방향을 얻고, 그 방향 속에서 나다운 삶을 비로소 시작하게 됩니다.